비단생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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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속도보다는 방향(동영상 보기)비단생 스토리 2019. 6. 4. 19:45
2008년 막내아들의 아토피 때문에 비단수(감자스프레이)를 개발한 이후 지난 10여년 아토피에 관한 총정리입니다. 5분 요약정리 먼저 보시면 좋습니다. - 1편 - 오행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토피의 원인 체질의 정확한 의미 아토피를 위한 음식 적용 원리 - 2편 - 스트레스에 대한 오행 분석 아토피 가려움의 메커니즘 피부열역학 제1법칙 비단수 사용 매뉴얼 보다 더 자세한 사항은 비단생-vidan.co.kr 고객센터에 문의해 주세요. https://youtu.be/dxKcFFnwAc0 https://youtu.be/W9AiaeF8-MM https://youtu.be/jMNlm4c2kno https://youtu.be/zb9gAcEBN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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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2008. 아이의 아토피, 비단생의 탄생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4:13
기대했던 감자팩은 출시되어 어느새 1만 명 가까운 회원을 자랑하는 감자쇼핑몰에 올렸지만, 뽀샤시 감자를 열정적으로 구매하던 회원들이 감자팩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샘플테스트를 통해 1천명 가까운 회원들로부터 후기나 설문을 받아본 결과로는 분명히 엄청나게 팔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질 않고 있었다. 먹는 것은 입소문이 매출로 바로 이어지기가 쉽지만 피부에 바르는 것은 의외로 입소문이 통하지 않는 분야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감자 판매하는 것과 감자팩 판매하는 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제 아무리 좋은 감자팩이라 해도 처음 보는 브랜드 제품을 피부에 바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화장품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2007년 말, 7년 가까이 잘 끌어왔던 감자쇼핑몰을 매각하기로 했다. 공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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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2007. 감자폭탄, 팩개발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4:10
2006년 봄. 강원도는 지난해의 감자가격 폭락의 여파로 재고감자가 넘쳐나 6천 톤 정도를 처리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남의 딱한 사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 발동했는지, 감자 가공 공장이랍시고 이제 막 시작한 나는 겁도 없이 1,100톤을 떠안겠다고 나섰다. 1,100톤의 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양인지는 나도 감자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공장 마당이 200평 정도인데, 거기에 팔레트 2단으로 쌓아서 마당 가득히 깔아 놓으니 겨우 300톤이 들어찼으며, 나머지는 인근 500여 평 규모의 빈 공장이 있어 그곳에 쌓아놓으니 800톤 정도가 들어갔다. 애초 가공자금 2억 원 대출에 대한 특별보증을 믿고 진행한 일이었건만, 감자 입고가 끝나갈 무렵 회사 재정구조의 문제로 특별보증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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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2005. 대책없는 감자가공 도전기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4:06
2004년을 결산해 보니 매출 5억 원에 순이익 900만 원, 빚은 2억 원에 육박했다. 첫 해 2천만 원이던 매출이 4년 만에 5억 원까지 올랐으니 주변에서는 상당히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줄 아는데, 연초 현금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상황이었다. 너는 장사를 할 줄 몰라.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자주 듣고 있을 때였다. 농가에서는 비싸게 수매해 와서 쇼핑몰에서는 싸게 판다는 것이다. 단지 그 때문이었을까. 매출이 매년 두 배씩 뛰도록 빚도 그에 비례해서 늘고 현금유동성은 제로 수준이었던 것이. 회계 매출이 늘어날수록 어느 선까지는 빚도 같이 늘어나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2003년 법인으로 전환 후 회계를 공부하고, 직접 컴퓨터로 전산회계를 시작하면서 사업의 구조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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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2004. 비와 감자의 이야기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3:54
은 사랑방과 같은 존재였다. 농산물의 특성상 선별에 선별을 거쳐 내보내도 클레임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라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소통은 이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고객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름철에 장마와 집중호우 등으로 몸살을 겪을 때였다. 아니 그 전에 매년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감자를 만지면서 유난히 비에 민감해져서 그렇게 고약하게 비가 내렸던 해들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감자를 캐야 하는 6월말부터 7월 중순 사이에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고 내리던 때이기도 해서 감자 캐는 일은 언제나 비와의 전쟁이었다. 2002년 여름. 그해도 유난히 비가 많았다. 6월초부터 감자를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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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2003. 감자를 마케팅하라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3:52
쇼핑몰 오픈 첫해, 3개월이나 걸려 팔았던 감자 30박스는 이듬해 2001년 10톤(500박스), 2002년 50톤(2,500박스), 2003년 100톤, 2004년 200톤... 이렇게 매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감자가 주력상품이 되어 찰옥수수, 고구마 등 영월지역 농특산물을 연간 50여종 취급하면서 쇼핑몰 매출도 그와 함께 신장하였다. 감자가 그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강원도 감자가 왜 이리 분이 안 나요?"에 대한 해답을 찾은 데 있었다. 2001년 여름. 하지를 앞두고 햇감자가 나올 때인지라 감자를 찾아 헤매고 다닐 무렵이었다. 의외로 영월지역에는 감자 재배 농가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서강 인근의 한 농가 하우스에서 감자를 캐는 걸 직접 보게 되었고, 그 농가를 찾아가 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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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2002. 인터넷 쇼핑몰로 밥 벌어먹고 사는 법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3:50
벌써 3번째 이사이다. 영월에 오자마자 첫해를 시내에서 보내고는 1년에 한 번씩 이사 다닌 것이. 인터넷쇼핑몰이라고 열었지만 매출은 매달 몇 백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몇 십만 원 정도. 이 정도로는 네 식구 생계유지로 어림도 없었다. 첫해 겨울 내내, 귤을 떼어와 길가에서 판매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대전 유성장터까지 내려가서 건고추를 판매하고 올라오기도 했으며, 여름에는 찰옥수수를 길거리에서 쪄 팔면서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병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사 오면서 보증금 5백만 원에 얻었던 작은 평수의 아파트마저 쇼핑몰 운영비와 생활비를 위해 보증금을 빼낼 수밖에 없어, 결국 보증금도 없는 팔괴 시골마을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했다. 그러기를 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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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2000. 물리학도, 감자를 만나다비단생 스토리 2016. 6. 18. 03:48
일생의 마지막 문학공모전이라고 생각한 문학동네 소설 응모가 깨끗하게 미끄러진 걸 알고 난 후 한 달 가까이, 밤마다 옥탑방이 있는 옥상을 거닐면서 뭐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농산물 전자상거래였다. 때마침 초고속인터넷이 전국으로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고향인 영월로 돌아가 농산물로 인터넷쇼핑몰을 하면 가족을 부양할 만한 돈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업계획이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빚을 내어 마련한 사업자금으로 공터에 컨테이너박스 하나를 사무실로 차려놓고 아내와 함께 인터넷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고랭지배추나 영월고추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근데 막상 쇼핑몰을 오픈할 11월이 되니 영월에는 배추라고는 ..